글그림에 대하여

글그림 이야기 그 첫번째 (part.2)

거람 김반석 2007. 1. 8. 23:27
 

서구 표현문화의 자유성들 기이함, 파괴, 성충동 같은 것들의 반환점을 돌아

이제는 약속 가능한 소통의 기호들을 통해

생각과 생각이 만나고, 질서와 질서가 만나 이상적인 승화를 꿈꾸는

시간들이 그림의 표현 속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아닐까?

피카소(picasso pablo 스페인1881-1973)

 20세기 미술사의 가장큰 이미를 남겨놓은 그를 두고

 “끊임없이 놀라움을 간직하고 다시 읽어 보게 하는 미술

 자연이 어떠한 경우에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그렸다 ”

 이렇게 짧게 말한 내용에도

 글그림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충분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방향을 돌립니다.  

 우리나라의 한 회사가 자기회사의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영어의 알파벳

 이니셜을 따서 상표나 로고를 만들었다면 그 선은 영어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조금 바꿔 한글의 선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열심히 한글을 연구하게 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한글에서 우리의 선이 만들어 지고 확대되어 간다면

우리들은 영어의 선에서 얻은 이미지가 아닌 우리의 한글에서

얻어진 우리의 선으로 세계시장에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거리에 넘치고 있는 영어 간판이 아름다운 한글로 가득한다면

우리의 도시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에게 고유한 한글의 이미지를

말없이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전시장이 되겠지요.


다시 그림의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선의 표현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연필/붓/칼/...

그중에서  모필 즉, 서예의 붓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먹을 가득 먹었을 때 그을 수 있는 선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부드러움/딱딱함/날카로움/느림/빠름/퍼짐/건조함/가늠/굵음/짧음/김

무거움/가벼움/ 두꺼움/얇음/깊음/얕음/밝음/어두움/고요함/움직임......

이렇듯 다양한 느낌을 한 자루의 붓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우리의 문화속에 있어왔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해온 시대의 흐름에 따라 먹을 갈고 붓을 다루는

훈련의 시간이 힘들어 점점 사용의 빈도가 줄어 들고 있지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꼭 만나야 할 도구이며

그 것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 한글을 붓글씨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서예라 하며 어릴

때부터 배워 왔습니다.

깨끗한 한지위에 검은 먹물이 스며들면서 아름다운 한글을 나타내는

과정을 깨끗한 어린이의 심성에 물들여 왔습니다.

붓글씨를 써가다 혹 실수를 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신중함도

배우고 오랜 연습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선을 그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잘 못된 획을 덫 칠할 경우 느낌이 없어짐으로 결국은

다시 써야 하기에 마음을 잘 가다듬고 단번에 붓을  움직여 전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비유한다면 어떨까요?

단번에 이루지지 않기에 열심히 준비하고 항상 노력하며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평온의 상태로 지켜가도록 힘쓰며  일을 추진

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이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진실한 삶을 살아 가는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요?

여기쯤에서 우리는 붓글씨의 표현 과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되풀이 할 수 없는 시간들과  항상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준비하고 노력하며 집중하는 마음의 상태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시 그림의 선으로 이야기를 옮겨가겠습니다.

자신의 선을 발견하기 위해서 출발점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듯

자신이 자란 고향이 늘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언제나 그곳이 편안함을 주는

고향이 되듯이 그림의 선 또한 그와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고향은 한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선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의 선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선사시대 / 삼국시댸 / 고려 / 조선 / 현대 / 이렇게 나눠보면            

문자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선사시대에도 그림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암각화가 그것입니다.

 

단단한 바위면에 돌로 쪼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었습니다.

음각도 하고 양각도 했습니다. 그 시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겨진 깊이는 10mm를 넘지 않습니다.

한자라는 문자의 기록이 시작된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그림은

고구려의 벽화일 것입니다.

바위 벽면위에 호분을 해초와 함께 덫 바르고  그 위에 자연염료를

사용해서 선을 그리고 그 위에 동물성 기름을 발라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무덤 속에 그려져 있는 모습이기에  구름위의 천상을

나타내는 듯 선의 끝부분은 대부분 날으는 구름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신라시대 경주 남산의 음각6존불은  다듬어 지지지 않은 바위면에 새겨진 음각화로

자연의 바위를 하나의 공간으로 하여 그 주어진 공간에  부처들을 알맞게 새겨 놓았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선들로 이루어져 있는 커다란 회화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균일한 음각의 선들은 그 깊이가 10mm를 넘지 않으며 선을 다듬기

위해 문지르지 않고 쪼아낸 모습으로 비바람을 견디며 자연 속에서

천년 세월동안 남아 지금도 생생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불화인 수월관음도는 평면의 화면위에 선과 색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특히 화면 전체에 흐르고 있는

선의 모습은 마치  작은 샘물이  흘러 커다란 바다를 이루고 파도를 만들어

쉼 없이 출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秋史 김정희는 중국의 문화권속에 살았던 그 시대에 자신의

고유한 서체를 만들기 위해 불교와 유교, 한문서체의 근간인

금석학을 독자적으로 공부하여 자신만의 필체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후손에게 세한도와 함께 물려 주었습니다.

 

중국의 앞선 명필들의 서체와 뚜렸이 구분되는 그 만의 느낌

글씨의 뼈만 추려 글을 만들고 남아있는 공간의 완벽한 조화를

만든 그의 필법은 글씨에서 그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산자 김정호 조선의 땅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길위에서 보냈으며

얼마나 많은 발자욱을 남겼을까?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고 길을 걷고

그것을 되풀이 하길 여러번 조선의 땅을 자신의 몸처럼 함께한 뒤에

목판위에 심어놓은 대동여지도 그 지도의 선은 그의 생각과 실천의

끝임 없는 노력의 결과로 표현된 그만의 선입니다.

이중섭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의한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

그 혼란과 절망 그리고 빈곤 속에서 그는 담배갑 은박지에 못으로

선을 긋고 유화물감을 문질러 은지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은박지 바탕위에 표현되어 있는 못자국의 선들이 세계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백남준 소리를 빛으로 만들고 그 빛을 비디오화면의 선으로 만들어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선의

발견을 위해 레이저를 이용하여 열린 공간에다 선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렇듯 선(線)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끝임 없는 탐구의 세계임을 확인하면서 우리의 자랑스런 선인들의

선(線)을 살펴보았습니다.

 

(끝)

※ 글그림 이야기 첫번째의 끝입니다. 이어서 두번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